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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승원
2025-09-0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해가 뜨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늦춰졌다. 아직 세상은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새벽 네 시 오십 분,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바닷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발걸음을 조금 서두르니 평소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다섯 시가 되었지만, 하늘은 아직 어둠속에 잠겨있다.

오늘은 처음부터 마음을 정해 두었다. 충분히, 그리고 힘껏 달려보기로. 그렇게 달리다 보면 늘 나타나는 경사가 있다. 언제나 그 지점에서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곳은 사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경사에 불과하다. 인생도 그렇다. 그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겨워 보이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별것 아닌 듯 작아져 있다. 다만 그 순간에 매몰되어 결국 평범한 날들을 놓쳐버린 자신을 후회하게 된다. 외부의 요인에 휘둘리지 않고 내 리듬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살아간다는 일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땀을 충분히 흘리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 근육이 단단해질 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도 작은 근육이 하나 더 생겨나는 듯하다. 나는 조금만 달려도 금세 많은 땀을 흘린다. 그래서인지 늘 뭔가를 선물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달리면서 흘린 땀방울이 내 안의 균형을 잡아주고,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물결에 번져나가며 하늘이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땀에 젖은 셔츠를 붙잡고 바람을 맞았다. 그 순간,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불쑥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들이닥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일들 앞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며 배운 건,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며, 거기서 무엇을 배우는지가 결국 나를 만든다.

아내가 언젠가 해준 말이다.

“잃어버린 건 생각하지 말고, 얻은 것만 생각해.”

그 말은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았다. 무언가를 잃는 순간, 우리는 쉽게 공허함에 빠진다. 하지만 그 공허 속을 오래 들여다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잃음이 만들어준 빈 공간에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변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애써 움켜쥔다고 해서 돌아오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또 하나의 사건이, 결국 또 하나의 이야기로 남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금세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그냥 한 걸음 더 내디디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이 지나간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걸음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3

달리다 보면 평소보다 훨씬 힘들고, 숨이 꽉 막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제 새벽 네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이어진 서울 일정을 치르고 나니, 오늘 새벽은 쉽게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뜬 뒤에도 10여 분간 지친 몸과 정신이 서로 설득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간신히 하루를 시작해 새벽 달리기를 나섰지만,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몸은 힘듦을 호소했고 결국 발걸음은 느려져 걷기 시작했다. 그때 옆을 스쳐 달려가는 두 명의 외국인을 마주쳤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따라 달리니 꽤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페이스메이커.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가며, 나도 내 호흡을 이어가는 일. 그런 존재가 있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조금은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연 누구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있을까.

어쩌면 내 발걸음을 바라보며 힘을 내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결국 삶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달려가는 여정이다.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4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무게와 깊이는 똑같지 않다. 어떤 시간은 금세 흩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고, 어떤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차이를 만드는 건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쌓이며 서로를 밀어 올릴 때, 시간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매일의 사소한 축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의 한 장 읽은 책, 짧은 메모 한 줄, 새로운 시도 한 번이 당장은 별 의미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우리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 준다. 이때 시간은 더 이상 흘러가는 흐름이 아니라, 나를 키워내는 토양이 된다.

시간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하다. 오늘 하루에도 아주 작은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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